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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사고의 증가와 노조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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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410회 작성일 21-07-2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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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곤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 전북지역본부 의장


[화학물질 사고의 증가와 노조의 역할]

1. 과연 선진국인가?

 지난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우리나라의 신청에 따라 우리나라 지위를 개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우리나라는 경제규모면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했고, 화학산업 분야에서는 5위권에 진입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노동자 생명 안전 보장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제도가 진정 선진국반열에 올랐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지 짚어 봐야 할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5천만 명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는 '3050클럽' 중에서 산재사고 사망자 수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화학물질에 의한 폭발 파열 화재나 화학물질 누출 접촉으로 발생한 대형 화학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 2012년 불산 누출 참사를 계기로 재개정된 화학물질 안전법이 2015년 1월 본격적으로 시행된 후 사고 발생 건수는 감소하는 추세였다.

법 시행 직후인 2015년 112건의 화학사고가 발생했으나 2019년에는 62건으로 45%가량 감소했다. 그러나 정부의 화학물질 규제 완화가 본격화되면서 2020년에는 96건으로 전년 대비 절반 이상(54.8%)이나 증가했다.

감소 추세에 있던 사고 건수가 2019년 이후 작년부터 증가한 원인은 무엇일까?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를 시작으로 지난해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경제단체들은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과잉 규제라며 철회할 것을 요구했으며, 정부는‘규제 혁신’이라는 용어를 빌려서 완화해 주었다.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인허가 처리기한을 75일에서 30일 내로 단축하고, 신규 화학물질 159종에 대해서 안전성 시험자료 등을 생략했다.

그 이후,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화학물질 관리가 또다시 완화됐다. 기존의 인허가 취급시설 인허가 단축과 함께 일본 수출 규제 사태 당시의 규제 완화 품목(159종)보다 2배 늘려 수를 확대했다. 화학물질 안전망에 대한 구멍은 점점 커진 것이다.


2. 화학물질 사고의 원인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화학물질 사고 원인의 대부분은 노후화된 산업단지 시설에 대한 부실 관리와 산업계 전반에 확산된 위험의 외주화와 비정규직화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발생한다.

현재 화학산업 기반시설들은 대부분 70~80년대 가동되기 시작하여 20~50년 이상 가동된 것이다. 모든 시설에는 사용 연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학 산업단지의 경우 가동 시한이나 사용 연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다. 문제가 생기면 땜질식으로 보수해 사용하므로 시설 노후화에 따른 화학 사고의 위험성이 상존해 있다.

더불어, 기업은 노후화된 시설관리에 따르는 위험 부담을 피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아웃소싱을 하는데, 이 때 최저가 낙찰제와 불법하도급 방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작업장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지난 1월 26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망 등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사업주 또는 대표자를 처벌할 수 있는‘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했으며, 2022년 1월 27일 시행될 예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3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이거나,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이상 발생한 경우 등을 중대재해로 규정하고 있다.

비록, 부족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망에 불과한 법이지만, 앞으로 사업주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안전보건에 관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전문인력의 채용, 예산 책정, 문제점 개선을 위한 위험성 평가,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의 구축 및 인증 등 안전보건관리 수준을 높이는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된다.


3. 향후 노동조합의 역할

화학사고 근절을 위해 노조가 주력해야 할 일은 사고 후의 보상보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활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노조는 회사가 관련법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고 회사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요구하여 파악하고 있어야한다. 노후화된 시설물과 장치에 대해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사용하는 지 항시 파악해야 한다. 노조의 대표자와 간부들은 담당 조합원 및 현장과 소통하고 유사시 노조 차원에서 경영자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 잡아가도록 직접 요구해야한다.

회사측이 회피하거나 법을 위반하는 일이 발생했을 시에는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여 공익제보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개인에 의한 공익제보는 개인의 윤리의식과 양심에 의거한 행동이지만 향후 회사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부당한 배치전환, 인사 상 불이익, 퇴직이나 해임 등의 위협에 처할 우려가 따를 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이 단체의 힘으로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며, 이는 노동조합이 맡아주어야 할 중요한 사회적 책무와 역할이며, 노동운동이 사회적 지지를 크게 얻을 수 있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다음으로는 화학사고 이후 재해노동자의 피해보상에 대한 노조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유해화학물질과 같은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산재보상에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가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재해 노동자가 상병과 업무에 인과관계 있다는 것을 재해 노동자가 직접 입증하는 과정이 따라야 하고 만약에 추후 희귀병으로 나타날 수 있는 고통은 고스란히 당사자의 몫이 된다.

산재 신청과 업무연관성 증빙을 위한 자료 수집, 증인 추가 등을 위해 관련 기관과 현장에 다시 출입을 해야 할 경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조는 산재 신청과 보상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활동을 뒷받침해야하며 회사가 이러한 과정에 적극 협조하도록 단체협약에 이를 명시해야한다.

더불어 모든 노동자가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이를 바탕으로 산재보상이외에 오랜 기간 후에 나타나게 될 후유증과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질환에 대해서도 회사로부터 보상과 치료비 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협약 내용을 상세히 명기해야한다.

 화학물질에 의한 사고는 모두 ‘중대재해’다. 당장의 인명피해 외에 이후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나게 될 후유증 그리고 지역사회 환경과 생태계 피해의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선진국’, ‘화학산업 글로벌 5위’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우리나라 화학산업의 안전관리는 아직 초보적 수준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 그리고 안전의식 수준을 높여 명실상부한 안전문화 선진국을 지향해 나가야 하는데 노동운동의 역할이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으면 우리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